사이에서: 장소, 그리고 사람

우주연 작가는 장소와 이동에 대한 주제들을 탐구하면서 활동하는 예술가다. 우 작가의 최신 작품들은 디아스포라, 혼합된 정체성, 다양한 의식구조 그리고 변화하는 지리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경계를 표현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작가 자신의 ‘이주민’으로서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최근에 발표된 디지털 사진 작품 시리즈인 “What’s My Name? (내 이름을 찾아서)”와 종이 엠보싱 작업으로 만들어진 “Gyopo Portraits (교포자화상)”이 바로 그 영감의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교포”라는 정체성은 외국에 거주하는, 민족배경을 한국에 두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인 동시에 그들이 고국이라는 장소와 문화에 대해 가지는 서먹한 관계를 함축한다.

“교포자화상” 시리즈는 대부분 얼굴에 초점을 두고 ‘사이에 낀’ 사람들이 맥락에 따라 상대적으로 또는 종속적으로 겪는 다름에 대한 경험을 표현한다. 두꺼운 백지 위에 새겨진 이 시리즈의 작품들은 한국어와 영어 기호들을 동반하기도 하면서 상당히 아름다운 느낌을 자아낸다. 전체를 관통하는 백색은 각각의 얼굴들을 유령처럼 알아보기 힘들고 또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또 조명의 영향으로 관람객의 시선에서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변화와 불확실성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고 또 마음속 깊은 곳의 실재와 표면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 사이에서 방황해야 하는 이주민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총 14점의 디지털 사진으로 구성된 “내 이름을 찾아서”는 많은 한국인 이주 가정들이 비자나 시민권 및 영주권 관련 문서들을 보관하는 서류철들을 매끄러운 이미지로 포착한다. 하나의 서류철이 한 이주가정의 삶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도 앞서 언급한 “교포자화상”과 비슷하게 중립적인 새하얀 배경 속에 표현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는 이주민들이 끝없이 삶을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어떤 열린 가능성과 장소를 의미한다: 역자 주). 서류철들은 수평으로 눈높이에 맞춰서 마치 투명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벽과 구분되지 않는 새하얀 바탕 덕분에 눈에 보이는 것은 대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구겨진 이민서류나 이민국 및 영사관 등지에서 온 듯한 빨강과 파랑이 교차하는 항공우편 봉투들이 보인다. 각각의 서류철들은 눈에 띄게 다른 색깔들, 그리고 가족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의 유무에 따라 서로 다른 두께를 보여준다. 결국 이들 하나하나가 교포로서의 현실적인 삶을 반영하는 “교포자화상”을 완성한다. 이 서류철들은 그들의 삶을 대리하는 상징물로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는 어떤 힘들고 어려운 사연들, 그리고 한때는 미래의 희망이자 이주민으로서 이루고 싶었던 꿈들을 대변한다. 어떤 이들은 이루었을 테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이루지 못한 그 미래의 모습을 말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주연 작가는 폴 고갱이 그의 가장 저명한 작품들 중 하나를 통해서 제시한 질문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들은 어려운 대답을 요구하는 실존주의적으로 중요한 질문들이며, 또 전 지구적으로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글: 릴리 웨이 (Lilly Wei)
릴리 웨이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예술 비평가이자 언론인, 그리고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독립 큐레이터이다.

번역: 김태은
김태은은 미국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